시간이 흐르고 흘러 퇴사를 결심한 때가 왔다.

퇴사하면서 한 가지 교훈을 얻게 됐는데 '돈에 미련을 갖지 말자'였다. 고3 때 담임선생님한테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뭐가 뭔지 모를 때라 '뭔 개소리하나' 싶었는데 막상 겪어보니 그제야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보통 이직하면 연봉이 비슷하거나 상승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이직할 때마다 연봉이 낮아지는 대신에

여가시간이 늘어났다. 남 눈치 많이보고 비교하는 걸 좋아하는 한국인 입장에서는 돈에 대한 미련을

떨치기가 어려운 편인데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려고 노력 중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퇴사를 하게 됐는데 우선 생산부서를 동네북 취급하고 있었다.

문제) 바이어로부터 출고지연에 대한 컴플레인이 왔다. 잘못한 부서는?

1. 불량자재 및 입고를 지연시킨 자재부

2. 출고일 맞추기 어렵다고 생산부에서 통보했음에도 억지로 밀어버린 영업부

3. 생산하는 생산부

정답은 3번.

다른 회사는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타 부서 인간들 왜 이러나 싶었다. 한두 번이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자주 그랬다.

사수 공장에 가면 책상에서 자고 있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었는데 항상 출고 때문에 밤새고

새벽에 잠들었다고 했다. 한 번은 타 부서 잘못으로 뜬금없이 사수가 경위서를 쓴 적이 있었는데

타 부서는 자기는 상관없는 마냥 가만히 있길래 일단은 내가 나설 일이 아니라 혼자서 가만히 입 다물고 있었다.

만약에 내가 이런 상황을 직접적으로 겪었다면

 

 

열 받아서 일단 사직서 던지는 동시에

 

 

키보드 워리어 빙의해서 회사 직원들 다 보라고 메일 날렸을 건데 다행히 발생되지 않았다.

간접적으로 영향이 있었을 땐 사수가 항상 말렸다. 우리 부서에 혜택이라도 있으면 입 꼭 다물고 있었을 건데

그런 것도 없었다. 사수한테 우리 너무 푸대접받는 거 아니냐며 하소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사람이 좋은 건지 아니면 먹여 살릴 처자식이 있어서 그런 건지 매번 씩 웃으며 '생산은 원래 그런 거라며,

네가 젊어서 아직 잘 모르는 거라며' 그냥 넘기곤 했다.

사원/대리들 푸대접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임원 2명이 지금까지 인건비 아끼려고 한 퇴사 기획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는데 사탄도 울고 갈 기획을 새롭게 선보였다.

어느 시점에서부터 동기들이 일요일에 복귀를 할 때 생수를 몇 통씩 사가기 시작했다.

전에는 없었던 행동이라 뭔가 싶어서 물어봤는데 회사에서 생수를 안 줘서 사는 거라고 했다.

처음 왔을 때부터 안 줬으면 아무 생각 없었을 건데 몇 년 동안 주다가 갑자기 안 줬는데

이유를 물어보니 아무 이유 없다고 했다. '물값도 아깝다'였을까??

더 웃긴 건 공장에 있는 사람들 전부 안 주는 게 아니라 과장 이상은 늘 하던 대로 원하는 만큼

지급을 계속한다는 거였다. 물 가격 많이 해봤자 1주일에 만원 근처였는데 하는 짓이

대놓고 사원/대리 저격하는 거라 아주

 

나는 멀리 있어서 해당 사항이 없어 멀리서 혼자 욕 하고 있었는데 이 동네에 평생 있을 수는 없고

언젠가 한국인들 모여있는 곳으로 가야 해서 나 역시 완전히 자유롭진 않았다.

내가 발령받은 곳이 오래 운영될 수 없는 공장이었는데 우리 회사가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이전한 거의 첫 공장이라 꽤나 오래 있어서 거의 단물은 빠질대로 빠진 공장이었다.

이미 내가 입사하기 전부터 축소나 폐쇄해야 한다는 말이 많았는데 진작에 조금씩 축소시키다가

폐쇄시켜야 하지 않았나 싶었다. 발령 당시에 공장이 베트남 법인 공장 중에서 수익이 가장 좋았는데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를 때라 좋은 공장이구나 생각했는데 나중에 혼자서 관리하게 되면서

보고서, 다른 공장들과의 연락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 자력으로 수익을 내고 있는 게 아니었다.

메인 지역 공장들이 몇 군데 있었는데 아직 셋업 중이라 생산성이 떨어져 셋업이 오래전에 완료된

내 공장으로 일부 오더를 돌리곤 했는데 단가가 좋은 오더들이라 이걸 통해 수익을 내고 있었다.

메인 공장들의 셋업이 조금씩 자리 잡으면서 내 공장이 적자로 전환됐다는 것은 말을 안 해도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돈 안 되는, 예전에 늘 하는 오더들만 했고 가지고 있는 것들도

메인 공장들로 옮길 계획이라서 폐쇄각을 재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공인 수급도 원활치 않았는데 이 동네는 공장일을 안 하더라도 다른 걸로 먹고살 수 있는 게 있어서

사람들이 공장에서 일을 하는데 미련을 가지지 않았다. 그래서 공인들이 자주 입/퇴사를 반복했다.

우리 공장만 있었던 게 아니고 당연히 다른 공장도 있어서 서로 공인 땅따먹기식으로 모집하고 있었는데

인근에 대규모 공단 설립 중이라 땅따먹기는 더욱 가속화될 예정이었다.

 

겨우 숨쉬고 있는데 빠르게 병풍 뒤에서 향 냄새 맡으러 가는 중이었다. ​

 

퇴사할 때쯤에 공장 인원 절반 정도 줄인다는 구조조정 계획이 나왔다. 사무실 직원 포함해서

약 850명 정도 있었는데 400명 정도는 보내야 했다. 물론 사무실 직원도 포함이었다.

 

 

직원들을 줄인다면 굳이 한국인이 있을 필요가 없어 나는 메인 지역으로 가야만 했는데

이게 퇴사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다. 여기는 한국인 상사들 거의 다 모여 있는 곳이었는데

일단 '임원 2명'은 얼굴만 봐도 토 나왔고 다른 상사들은 괜찮은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게 불편했다. 나랑 비슷한 시기에

퇴사한 대리가 있었는데 본인도 이 지역으로 정말 오기 싫어했다. 호치민에서 같이 밥 먹으면서

메인 지역으로 발령날 거 같다며 가면 사직서 낸다고 했었다. 발령이 났고 메인 지역으로 갔는데

사직서 안 내고 있길래 괜히 하는 소리였네 싶었다. 어느 날 임원이 별 것도 아닌 걸로 대리한테

소리를 질러서 바로 사직서를 냈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임원들 얼굴 보기 싫어서 냈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인보다 베트남인들을 더 보호해준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회사의 최종 목적은 베트남인을

육성해서 현채 한국인들보다 더 인건비를 아끼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었다. 나중에 베트남인들한테

한국어 수업 지원을 해주기 시작했는데 임원 제외하고 한국어 능력자들을 자리에 앉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한국어 배우는 베트남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지금까지의 기가 막힌 인사관리를 봤을 때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있던 동네 공인들은 순하고 착하길래 대부분 베트남인들이 다 그런가 싶었는데

메인 지역 공인들은 정반대였다. 제품을 만들다 보면 쇳조각이 실수로 들어갈 수 있는데

검침기로 전부 골라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는 QA가 포장까지 완료된 제품을 검사하다가

쇳조각을 발견하곤 했는데 그 빈도가 빈번했다. 거의 일부러 넣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몇 번의 회의를 통해 개선한다고 했는데 나중에는 공장에서 쓰지 않는 외부 쇳조각, 검침기에 걸리지 않는

나무 조각들이 나왔었다. 공장 내에서 전부 발견했으면 그나마 넘어가는데

바이어가 물건 받고 발견한 적도 있어서 난리가 난 적도 있었다. 범인을 제보하면 포상하겠다고 했는데

어느 제보도 받을 수 없었다. 조직적으로 회사 엿 먹이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해외에 오래 있고 싶지 않기도 했다. 인건비가 저렴하니까 베트남으로 몰리는데 그 저렴함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당장은 아니지만 일부 회사들이 미얀마나 캄보디아 등으로 이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인건비 때문에 이전하다 보면 언젠가 나이 들어서 아프리카 오지에 있지 않을까 동기들끼리

농담하곤 했다. 늦기 전에 빠른 결단이 필요했다. 그리고 일종의 한류로 베트남인들이 현지에서

한국어 배우거나 한국으로 유학 오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굳이 비싼 한국인을 채용할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고심 끝에 사직서를 던졌다. 사수가 깜짝 놀라서 다음 날 공장으로 찾아왔다. 이런저런 이유를 말하니

'네가 높은 직급에 올라가서 회사를 개선시키지 되잖아'라고 하는데 창립 멤버나 오너 일가나

가능할 법했고 높은 직급에 올라가더라도 타성에 젖어 과거 일을 기억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확고한 의지는 없었는데 사수의 끈질긴 설득 끝에 계속 다니는 걸로 1차 사직서는 끝났다.

이틀쯤 지났을 때 인사 직원이 찾아왔다.

나 : 뭐 결제할 거 있어?

직원 : 공장장님 퇴사한다는 이야기 있는데 사실인가요?

 

직원들이 이런식으로 나한테 시선집중함

나 : 뭔 소리야? 누가 그래?

직원 : 다른 공장에 벌써 소문났고 나도 방금 들었는데요.

나 : 그냥 소문이고 계속 있는다.

직원 : 진짜요?

나 : 못 믿네 ㅎ 공장 문 닫을 때까지 여기 있을 거다.

6개월쯤 지났을 때 도저히 안 될 거 같아서 다시 한번 사직서 던졌다. 이번에는 확고한 의지가 있었다.

3일 뒤에 사수가 공장에 와서 이야기하다가 나한테 화를 내는데 그렇게 내는 건 처음 봤다.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나 싶은데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 사수가 나를 나쁘게 보지 않았는데

본인이 퇴사할 때까지 같이 일해보자, 퇴사하고 외주공장 차리면 일 좀 달라 등등 여러 제안을 했었기에

더욱 화를 낸 게 아닌가 싶었다. 아침에 벌어진 일이었는데 서로 꿍해 있다가 점심 먹으면서

이야기하다가 그냥 풀렸다. 사수가 나를 포함해서 사무실 전 직원 불러 회의하면서

퇴사 발표하고 앞으로 공장 운영은 사수가 가끔씩 찾아와서 관리하는 것으로 했다.

저녁에 다 같이 회식했다. 직원들이 '공장 문 닫을 때까지 있는다 했으면서 왜 먼저 가냐고 거짓말한 거냐고'

아쉬운 듯 묻길래 씩 웃으면서

 

 

 

다음 날, 사수는 본인 공장에 급한 일이 있어서 갔고 퇴사까지 2주 정도 남아 있어 직원들한테

단기속성으로 알아야 할 것을 가르쳤다. 현장은 이인자가 맡기로 했는데 나보다 훨씬 공장에 오래 있었지만

생산 경험은 나보다 없어서 제품의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지 가르쳤다. 사무실 매니저급 직원들한테는

나만 보던 자료를 보여주고 오더 관리나 운영, 문제점 해결 방법을 가르쳐줬다. 말로만 해서 될 일이 아닌 듯했으나

나름 머리가 똑똑한 직원들이었고 3년 넘게 공장 짬밥 먹은 서당개들도 있어 별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다.

사수가 자주 온다면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분명히 자주 못 올 거라는 확신이 있어 최대한 가르쳤다.

나는 나대로 전에 있던 선배한테 받은 인수인계서 수정해서 사수한테 넘겼다.

사직서 수리되기 전까지 스트레스가 정말 심했는데 수리되는 순간

 

 

퇴사 전 날, 모든 짐을 정리했다. 사택에 책상이 쓰기 불편해서 내 돈 주고 의자 추가해서 산 게 있었고

다른 것들도 있었는데 들고 갈 수 없어서 공장으로 옮겨서 비품으로 쓰라고 했다.

퇴사하는 날, 마지막으로 사무실 직원들 모아서 그동안 고마웠고 앞으로 공장 운영 잘하라고 했다.

몇몇 직원들은 울기도 했다. 생산 현장으로 가서 구석구석 다시 한번 챙겨봤다.

 

물론 내가 공명도, 죽는 건 아닌데...

 

관리자들이랑 악수하면서 역시나 고마웠다고 인사했다. 관리자 한 명이 안 보였는데 렌터카 타고

사장이 있는 공장 찍고 사수 공장에 가야 하는 빠듯한 일정 때문에 그냥 가려고 하는 순간

울면서 달려오길래 잘 있으라고 다독여줬다. 렌터카 타면 업무처리 때문에 항상 노트북을 보고 있었는데

떠나는 마당에 알아서들 하겠지 싶어 전원 켜지도 않았다.

한 숨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사장이 있는 공장에 도착해 있었다. 사장한테 퇴사한다고 인사했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끈기가 없어. 키워주면 얼마 안 있어서 퇴사하고,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말이야' 그러길래

푸대접한 거 나열하려다가 굳이 그럴 필요 있을까 싶어 입 꼭 다물고 있었다. 참고로 사장이 퇴사한 직원들

베트남에서 재취업 못 하게 꼼꼼히 신경 쓰는 배려 깊은 인간이었다. 나머지 직원들한테도 간단히

인사하고 사수 공장으로 출발했다.

도착해서 렌터카 기사한테 그동안 잘 타고 다녔다고 인사하고 돌려보냈다.

사무실 가서 사수한테 인사하고 다른 부서 사무실에서 들려서 베트남 직원들한테도 인사했다.

다들 왜 퇴사하냐고 묻던데 대충 얼버무린 듯 대답해줬다. 퇴근하고 사수, 나, 각 부서 매니저급 베트남 직원들

총 5명 모아서 회식을 했다. 같은 공장에서 일은 안 했지만 자주 메일 주고받았고 전화도 했고 사수 공장에

놀러 가면 같이 이야기도 해서 어색하진 않았다.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마지막 인사를 했다.

다음 날, 원래는 마지막 근무를 해야 하는데 할 것도 없어서 사수한테 말해서 출근 안 하고 자고 있다가

일어나서 그냥 호치민으로 갔다. 저녁에 마지막으로 선배/동기들끼리 모여서 식사를 했다.

예전부터 말했던 거라 뭐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

출국 날에 통일궁이랑 전쟁박물관 갔다.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으니 안 가고 몇 년을 미뤘는데 출국 날에

갈 줄을 상상도 못 했었다. 그동안 안 봤던 곳 전부 둘러보고 쉴 겸 카페에 혼자 앉아 멍하니 있었다.

뭔가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1달 정도 베트남 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한국에 급한 볼일이 있어 그렇게 하진 못했다.

비행기 시간에 맞춰 공항에 도착했다. 처음 베트남에 도착해서 본모습과 똑같아 보였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꿉꿉함에 어느 정도 적응을 했다는 점.

이렇게 베트남 주재원 생활을 끝내게 됐다.

 

요약

1. 나 혼자 멀리 떨어져서 있어 재밌게 생활했다.

2. 마냥 즐겁고 좋은 일만 있을 줄 알았는데 더러운 것도 직접 겪고 많이 보기도 했다.

3. 인생에 다시없을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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