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떨어진 우리 동네까지 사수 말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간혹 한 번씩 다른 한국인들이 방문하곤 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일하고 있는데 영업부에서 메일이 왔다.
홍콩지사에 있는 여자 이사가 베트남을 방문 예정이고 우선 내 공장에 3일 동안 머무를 예정이니
차량 및 숙소를 준비해놓으라는 거였다. 혼자 있으면서 손님맞이 하는 건 처음이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선 영업부 선배한테 전화를 했다.
나 : 여길 왜 옵니까? 멀기도 멀고 딱히 볼 것도 없는데? 그것도 3일씩이나??
선배 : 나도 왜 그런지는 모르겠고 있는 동안 잘 대접해라.
나 : 와서 뭐합니까?
선배 : 특별한 건 없고 품질이나 출고문제 없는지 확인하는 거니 평소대로 하면 되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사수한테도 전화했다.
나 : 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수 : 평소대로 하고 시키는 거 있으면 하면 된다. 품질에는 좀 더 신경 쓰고.
나 : 여기 와 보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사수 : 걔 내 후배다. 내가 갈 필요 없고 가고 싶어도 내 공장 일이 바빠서 못 간다. 알아서 해라.
대수롭지 않게 말하니 진짜 별 거 아닌가 싶었다.
일단 베트남 도착 시간을 확인해서 공항에 렌터카를 대기시키도록 했다. 호텔은 예전에 전기 끊겼을 때 갔던,
VIP룸이라며 제일 좋은 방을 예약했는데 동네 수준을 봤을 때 괜찮아 보였으나 5성급 스탠더드와
비교가 되려나 하는 정도였다. 근데 호텔이 이거밖에 없어서 대안이 없었다.
홍콩 이사 말고 한 명 더 같이 오기로 했는데 영업부에서 일하는 중국인 누나였다.
업무 처리에 있어 많이 도와줬고 호치민에서 한 번씩 저녁 같이 먹곤 했다.
결혼하고 딸도 있었는데 가족들은 중국에 있고 혼자서 베트남 생활하고 있었다.
누나는 홍콩에서 이사랑 같이 근무했었다고 했다. 호텔방을 누나 것도 잡아주려고 했는데
우리 집에 남는 방에서 잔다고 했다. 회삿돈 아깝다며 그랬는데 잡아줘도 티도 안 난나고 해도
극구 사양하길래 맘대로 하라고 했다.
방문하기로 한 날 오후 늦게 공장에 도착했다. 간단히 인사 정도로만 나누고 공장 돌아보기에는
시간이 애매해서 바로 퇴근하고 저녁 먹으러 갔다. 손님 데리고 갈 만한 식당이 없다시피 한 동네라
3일 동안 2군데 돌아가면서 점심, 저녁을 먹었다. 아침은 택시로 호텔에서 픽업하고 쌀 국숫집 갔다가
다시 택시로 공장으로 갔다. 3명이서 대화를 하는데 한국어랑 영어를 번갈아 가면서 썼다.
이사는 있는 동안 공장을 둘러본 뒤 '품질에 신경 좀 더 써달라' 한 마디 정도만 했다.
한껏 긴장했는데 정말 별 거 없이 끝나서 다행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뭔가 허탈했다.
그냥 놀러 온 게 아닌가 싶었다. 마지막 날 렌터카 불러서 다른 공장으로 보냈다.
나도 사수 공장에 출장 가는 경우가 가끔 있었는데 말이 출장이지 그냥 안부 인사하러 가는 정도였다.
거의 토요일에 방문했는데 주로 사수가 내려오라고 했고 정말 급하게 문제가 생겨
사수랑 나랑 같이 이야기해야 해서 내려가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런 경우는 정말 드물었다.
사수 공장 출근시간에 맞춰 가야 하기 때문에 항상 새벽에 출발했다. 아침은 그냥 렌터카 타고 가다가
길 가에 보이는 아무 노점에서 반미 사 먹었다. 도착하면 생산부 사무실에 가서 사수한테 왔다고 인사하고
사수 바로 앞에 있는 빈 책상에 앉았다. 서로 할 일이 있어서 안부나 묻고 공통된 문제 있으면 간단히만 이야기했다.
혹시나 회의하면 나도 참석시켰는데 나랑 관련이 크게 없다 보니 그냥 듣기만 했다.
내 일이 어느 정도 끝나면 슬슬 타 부서에 인사나 하러 가거나 현장을 돌아다녔다. 사수한테는 따로
어디 어디 갔다 온다고 말하진 않았다. 사수도 달리 묻지도 않았다. 생산부 베트남 직원들한테 인사하고
영업부 가서 인사하고 현장 한 바퀴 돌고 자재부로 갔다.
자재부에는 선배 1명이랑 매일 업무 메일 주고받는 베트남 누나들 3명이 있었다.
문 열고 들어가면 선배는 '왔냐?' 면서 반겨줬고 3명은 '또 왔네' 라며 씩 웃었다.
선배랑 차 마시면서 30분 정도 이런저런 이야기하고 누나들이랑 이야기했다.
나 : 오랜만이네 ㅎ 별 일 없지?
누나들 : 왔네 ㅎ 오빠?
나 : 오빠라니? 호칭은 똑바로 해야지 누나!
누나들 : 일 하는데 방해하지 말고 가라 ㅎ
나 : 자재나 잘 챙겨줘
농담하다가 마무리는 자재나 잘 챙겨달라는 대화로 늘 끝났다. 점심시간이면 식당 가서 다른 한국인들이랑
같이 밥 먹고 바로 호치민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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