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사무실 직원한테 데이트 장면을 딱 걸렸는데... 토요일 오전 근무를 끝내고 집에서 같이 점심
만들어 먹고 영화 보려고 마트에 갔다. 같이 손 잡고 입구에 들어가는 순간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장면 마냥 직원이랑
눈 마주쳤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직원이 나보고 씩 웃길래 나도 웃으면서 월요일에 이야기하자고 했다.
집에 와서 들켰으니 월요일에 회사에서 공식 발표한다고 하니 여자 친구도 동의했다.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직원들이
와서 맞냐고 물었는데 이미 주말에 전화 돌린 듯했다. 평소에 직원들이 퇴근하면 매일 혼자 있어 외로움 타고 있는
나를 걱정해주고 있었는데 이제 혼자에서 벗어나는 상황이라 직원들이 나의 연애를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는데 내가 들키기 전부터 이미 다들 알고 있지 않았나 싶다. 가십거리를 좋아하는 직원들에게
나의 연애는 가장 흥미로운 가십이었으니.
어느 평일 저녁 집에 혼자 있는데 동기한테 전화가 왔다.
동기 : 뭐해? 퇴근했어?
나 : 벌써 퇴근했지. 너는?
동기 : 오늘도 야근이다...
나 : 고생해라 ㅎㅎ 근데 웬일이냐?
동기 : 너 여친이랑 집에서 논다며?

나 : 어떻게 알았어?!??!!!
동기들한테 여친 생겼다고만 했지 어떻게 노는 것까지는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동기 : 내 밑에서 일하는 베트남 직원이 알려주던데? 우리 공장 말고 다른 공장에도 소문 다 났어.
나 : 우리 공장 직원들한테도 이야기 한 적 없는데?
동기 : 자세한 건 모르고 XX직원이 좀 실망한 눈치더라.
나 : 아 ㅎㅎ 걔 입장에서는 실망할 수도 있는데 나랑 사적으로는 연결된 건 없으니 신경 안 쓴다.
근데 소문이 이렇게도 나는구나.
나름대로 추리해봤는데 점심시간에 여친이 직원들이랑 밥 먹으면서 이야기하고 직원들이 다른 공장 직원들과 메일 주고
받으며 소문난 게 아닌가 싶었다. 다행히 베트남 직원들 사이에서만 소문나고 한국인 임직원들은 몰랐다. 만약 사장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통역하라고 뽑았더니 월급 주면서 연애하고 있네.' 라며 나는 시말서 쓰고 여자 친구는 바로
해고됐을 듯했다.
시간은 흘러 퇴사를 생각할 때쯤에 '여친은 어떻게 해야 하나?' 궁금증이 생겼다. 지금까지는 딱히 나쁜 점 보이지 않고
성격도 괜찮아 보여서 한국에 데리고 가서 결혼할까 싶기도 했고 아니면 깔끔하게 헤어지고 갈 길 가야 하나
싶기도 했다.
'헤어지는 게 맞겠다.' 라고 판단을 내리게 한 시발점이 된 사건이 하나 있었다. 동기들과의 저녁 약속이 있어서
몇 달만에 호치민에 가게 됐다. 호텔방에서 뒹굴거리다가 씻고 약속 장소에 가려고 화장실 들어가려는데
여자 친구한테서 문자가 왔다. 내용은 별 내용 아닌, '뭐 하고 있냐'는 거였다. 그냥 씻고 나와서 답장할 생각에 바로
답장 안 하고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10분 뒤에 나와서 폰을 봤는데

문자 5개랑 부재중 전화 2통 와 있었다. 문자 내용은 '답장 왜 안 해? 뭐해? 빨리 답장해줘. 다른 여자랑 있는 거 아냐? 의
내용이었다. 전화 걸고 씻고 나왔다고 설명하고 오해하지 마라고 오늘 동기들 만날 거라고 말해주니 '알겠어.' 라고
대답은 하는데 뭔가 찝찝했다. 동기들하고 식사하면서 '이런 일 있었다.' 라고 하니 베트남 여자들이 집착이 있는
편이라고 이때 처음 들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막상 들으니 한숨이 나왔다. 호텔로 돌아와서 침대에 누우니
한숨이 나왔는데 '헤어져야 하나' 생각하다가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결국에는 헤어지게 된 사건이 발생했다. 평일 오후, 여친이 외출증 들고 나한테 왔다. 간단하게 이유를 적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나 : 이유가 안 적혀있는데?
여친 : 집에 보내주세요.
나 : 아니... 이유가 없는데 어떻게 보내줘? 어디 아파?
여친 : 아뇨.
나 : 집에 무슨 일 생겼어?
여친 : 아뇨. 그냥 집에 보내주세요.
나 : 아무 이유 없는데 내가 왜 외출증에 서명해줘? 너보다 훨씬 오래 일한 직원도 나한테 이유 말하면서 서명받는데?
자리로 돌아가라.
'갑자기 뭔 일이야' 라는 생각 중에 베트남어로 된 이메일이 하나 왔다. 여친이 보낸 거였는데 '집에 안 보내주면
퇴사할 거에요.' 라고 적혀 있었다.

열 받아서 여친 부르고 인사 직원 불렀다.
나 : 여친아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라. 인사 담당아, 얘 내가 오늘부로 해고하니까 급여처리해줘라.

인사 및 다른 직원들 : ???????!!!!???
여친은 울면서 자기 자리로 갔다. 마침 사수도 공장에 와 있던 차라 후보고를 했다. 사수는 '니가 관리하는 공장이니까
알아서 잘 판단했겠지.' 라며 별 말 없었고 자기가 나중에 사장한테 따로 보고한다고 했다.
퇴근하고 집에 오니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을? 혹시 큰 그림?'
전화하니 술 마시고 울고 있었는데 도저히 아닌 거 같아 헤어지고 각자 갈 길 가자고 했다. 그 뒤로 문자가 몇 번 왔는데
그냥 다 삭제하고 답장 안 했다. 그때 나 역시 감정적일 때라 홧김에 일사천리로 처리해버렸는데 좀 더 이성적으로
대처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인생극장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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