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다 보니 직원들 결혼식에 몇 번 참여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회계직원이 나한테 왔는데

 

직원 : 공장장님!

 

나 : 응? 결제할 거 있어?

 

회계직원이 나한테 오는 경우는 결제 아니면 외출증에 사인해달라는 것 밖에 없었다.

 

직원 : (빨간 봉투를 나한테 줌)

 

크리스마스도 아닌데 웬 카드를 주나 싶었다.

 

나 : 이거 뭐야?

 

직원이 베트남어로 언제 어디로 오라고 하길래 잘 이해가 안 갔는데 이때 처음으로 결혼식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다른 직원한테 영어로 통역을 부탁하니 '이 사람은 이게 처음이지' 라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결혼식 청첩장이라고

 

설명해줬다. 자세히 읽어보니 양가 부모님, 신랑, 신부 이름 및 시간, 장소가 적혀있었다. 우리나라처럼 업체에서

 

대량으로 찍어낸 거 같았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초대받은 사람의 이름이 수기로 적혀있었다. 다른 직원들한테 받았냐고

 

물어보니 자기들은 진작에 받았다고 했다.

 

 

나 : 이거 처음 받아보는데 어떻게 해야 돼?

 

직원들 : 봉투에 축의금 넣어서 입구에 봉투 넣는 통에 넣으면 돼요.

 

나 : 얼마 넣어야 하는데?

 

직원들 : 아는 사이면 2~30만동, 친하면 50만동요.

 

당시 이 동네 시세(?)인 거 같았다.

 

직원들 결혼할 때 100만동씩 넣었는데 딱히 돈 쓸데도 없었고 맛있는 거나 사 먹으라며 줬다.

 

 

결혼식 당일, 직원 오토바이를 같이 타고 갔다. (주소 있어서 택시 타도 되는데 왜 오토바이를 탔는지 모르겠다.)

 

보통 자기 집이나 공토에 테이블 깔고 무대 꾸며서 식을 치렀고 집안에 돈이 좀 있다 싶으면 식장을 빌렸다.

 

입구에 청첩장 넣는 통에 봉투를 넣고 주변을 살펴보는데 정말 어색해 보이는 '웨딩 사진'이 있었다. 렌터카 타고

 

호치민 내려갈 때마다 결혼식 장소를 지나면서 창문 너머 입구에 있는 사진을 봤는데 너무 인위적인 자세에 합성 티가

 

심하게 났었다. 멀리 떨어진 차에서 봐도 어색했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완전 어색해 보였다.

 

 

사진보다 더 어색한 게 있었는데 직원들이 원피스나 아오자이 입고 머리랑 화장하고 온 거였다. 맨날 생얼에 평범한 옷

 

입고 사무실에서 일하는 거 보다가 꾸미고 온 거 보니까 평소에 같이 일하는 사람이 맞나 싶었다. 너무 달라서

 

'누구세요? 못 알아보겠다.' 라고 하니 다들 웃었다. 화장이 우리나라 90년대 스타일이었는데 문득 그 시절 감성이

 

느껴졌었다. 새삼 화장의 위력을 느낄 수 있었다. 어디서 했냐고 물으니 다들 미용실에 갔다고 했다. 우리 집 앞

 

미용실들이 일요일 아침마다 사람이 넘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음식은 뷔페는 아니었고 Catering 업체가 테이블마다 세팅을 해줬다. 음식 맛은 일반식당 수준인, 평타는 했다.

 

먹고 있는데 남자 직원들이랑 결혼하는 직원 아버지 되는 사람이 한국인이 와줘서 고맙다고 계속 맥주를 권해서

 

짜증 났는데 좋은 날 분위기를 망칠 수 없으니 미소 지으며 적당히 받아줬다.

 

 

예식은 한국이랑 비슷하게 진행됐는데 신랑, 신부 입장하고 주례사 하고 인사하고 퇴장하고 밴드가 노래 부르거나

 

하객이 부르거나... 큰 차이점은 없었다. 식 끝나면 신랑, 신부는 자동차를 타고 여행 갔다. 유급 휴가를 4~5일 줬다.

 

 

마지막으로 참석한 결혼식은 사무실 남자 직원이었는데 와이프가 현장 직원이었다. 한 4~5년 정도 사내커플이었는데

 

언제 결혼하나 싶은 찰나에 결혼하게 됐다. 이 때는 내가 여친이 있을 때라 같이 택시 타고 참석했다. 집안에 돈이

 

있었는지 식장을 대관했었다. 도착해서 축의금 내고 어색한 웨딩사진을 뒤로하고 식장에 들어가니 테이블이 꽤나

 

많았고 반 정도는 사람이 있었다. 빈자리에 앉아 여친이랑 대화하면서 사람 구경하고 있었는데 우리 공장 직원들 말고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찾아왔는데 사수가 관리하는 공장 자재부 직원들이었다.

 

 

나 : 너네들 어떻게 여기 왔어?

 

직원 : 초대받고 왔지.

 

나 : 남자 직원이랑 어떻게 아는 사이야?

 

남자 직원은 자재부 일과 전혀 관련이 없었다.

 

직원 : 회사 베트남 직원들끼리 한 번씩 축구하러 우리 동네 오는데 몰랐어?

 

나 : 몰랐지 ㅎㅎ 아침에 준비하고 여기까지 온다고 바빴겠네? 너는 미용실까지 들려야 해서 제대로 못 잤겠네?

 

직원 :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왔지.

 

나 : 설마 오토바이 타고 온 거 아니겠지? ㅎㅎ

 

직원 : 당연히 렌터카 타고 왔지. 근데 옆에 여자는 누구야? 혹시 여자 친구?

 

나 : 맞아. 내 여자 친구.

 

직원 : 소문은 듣고 있었는데 사실이었네. 내일 출근하면 여자 친구 맞다고 다른 직원들한테 말해야겠네.

 

나 : 직원들한테 말하는 건 괜찮은데 사수한테는 말하지 마. 사수 아직 모르니까.

 

직원 : ㅇㅋ

 

 

늘 봤던 대로 식 끝나고 항상 마무리는 술이었다. 한 명씩 한 명씩, 열 명 넘게 찾아오면서 원샷하자고 하는데

 

이게 결혼식인지 회식인지 구분이 안 갔다. 몇 번 화장실 가서 토하고 나서 식 끝났길래 도망치듯이 집에 가서 누웠는데

 

눈 뜨니 월요일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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