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 3은 자재공장에 발령받았는데 발령 이후로 회식 말고는 얼굴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가끔씩 통화하면 매번
한숨 쉬며 생기 없는 목소리를 냈다. 회계 지원했었는데 회계도 하면서 생산관리도 하고 있었던 거 같았다. 거의 매일 밤
12시까지 근무하고 새벽 4~5시에 출근할 때도 있다고 했었다. 공장 안에 기숙사가 있으면 노예처럼 일할 확률이
높은 편인데 동기 3이 그런 경우였다. 윗사람에 대한 스트레스도 많았고 오지에 있어 외박을 자주 나오지 못했는데
역시 거의 오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맘만 먹으면 외박 나올 수 있는 나와는 차이점이 있었다. 차량 지원을
잘 안 해줬는데 같은 사원임에도 불구하고 나 같은 경우에는 내가 원할 때 렌터카 불러서 회사 경비로 처리했는데
동기 3은 에어컨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마을버스 비슷한 차를 본인 돈으로 표 끊고 몇 번이나 환승하고 다닌다고
했었다. 자주 안 나오다 보니 한 번 나올 때마다 먹을거리를 한 달 치 이상의 양을 사 가곤 했다.
명절이 찾아와서 한국으로 잠시 귀국했다. 시간은 흘러 베트남으로 출국해야 하는 날, 동기 몇 명이랑 연락해서
인천공항에서 만났다. 동기 3의 성격을 봤을 때 어디에 모여있냐고 먼저 연락이 왔어야 하는데 오지 않아서 우리들끼리
'먼저 티켓팅 했는 거 아니냐, 출국 안 하는 거 아니냐' 농담하다가 연락했는데 되질 않았다. 뭔가 마음 한 구석에서부터
찝찝한 마음이 생겼는데 설마 싶었다. 이후로 도저히 다른 사람을 신경 쓸 여유가 있긴커녕 내가 비행기 놓칠 거 같은
상황이 발생했는데 임원 한 명이 무게 초과 때문에 짐 배분해달라며 우리들한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기다리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먼저 수속 밟았는데 (임원 비행기 놓쳤음) 대기줄이 너무 길어서 초조한 마음에 1분이 1시간 같았다.
더군다나 나는 베트남 직원들 선물 사준다고 면세점까지 가야 해서 3보 이상 무조건 전력 질주했다.
(선물 산다고 50만원 쓴 건 함정)
비행기 타면서 그제야 동기 3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데 얼굴은 못 봤지만 당연히 비행기 안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도착하고 공항 밖에서 다들 모였는데 동기 3만 없었다. 선배들이 우리들한테 어디 있냐고 물었는데 인천에서의 상황을
설명하니 더 이상 묻질 않았다. 나는 렌터카를 불러 놓은 상태라 먼저 타고 동네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전화로 전말을
들을 수 있었는데 출국 1주일 전에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사직서를 제출했는데 베트남 법인이 아니라 서울 본사에
제출을 했다. 인사부장은 이미 알고 있었고 명절 때 베트남에 있었던 직원들도 알고 있었는데 한국에 다녀온 직원들만
몰랐던 상황이었다. 농담이 진담이 돼 버렸는데 어이없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했다.
사원 선배 3은 자재부 소속이었는데 나는 다른 자재부 대리와 업무를 진행해서 이 선배와는 1년에 1~2번 정도만
같은 업무를 진행했다. 일은 그럭저럭 한다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역시나 회사에서 퇴사를 권고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계륵 같은 존재가 아니었나 싶었는데 딱히 눈에 띄는 일이 아니었고 베트남인으로 대체 가능해서 인건비를 아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랬던 거 같은데 오판이었다. 선배는 결국 퇴사를 했고 이렇게 사원 선배들은 전멸해 버렸다.
이후로 상황이 아주 재미있게 흘러갔다. 베트남인으로 대체를 했는데 계속 자재 수급에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내 공장이야 수습 가능할 정도였지만 다른 공장들에서 자재 수급이 어려우니 생산라인을 자주 변경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그리고 베트남인 본인이 뭔가 자기가 능력이 있어서 한국인 대신에 그 자리를 꿰찼다는 자만심, 회사가 자기를
비호해주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던 거 같았는데 일처리가 정말 개 같았다. 한 번은 정말 열 받아서
'일을 정말 뭐 같이 하네, 우리 회사 직원 맞냐? 계속 팀킬 하는데 경쟁업체 스파이 아니냐' 며 전화하고 임직원들 보라고
CC 걸고 메일 보낸 적이 있었다. 사수가 깜짝 놀라서 중재했고 전화 와서 다음부터 이런 일 생기면 내가 처리할 테니까
본인한테 먼저 연락하라고 했다. 상황이 점점 악화되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한국인을 현지 채용으로 한 명
뽑게 됐다. '왜 사원 선배를 보냈는지?' 누구나 이런 생각을 했지 않았나 싶었다. 근데 몇 개월 후에 현채 한국인도
퇴사를 했다.
나는 퇴사하기 전에 회사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심상치 않아 남아있는 동기들한테 '더러운 꼴 보기 전에 빨리 집에
가야한다' 라고 종종 말을 했었다. 웃으면서 넘기던 동기 4는 결국 더러운 꼴을 보고 퇴사를 하게 됐다. 우리 회사는
메인 공장 말고도 소규모 공장이 몇몇 있었는데 동기가 속해있던 지역에 베트남인으로만 운영되고 있는 소규모 공장
한 곳이 아주 개판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한 번은 우리 동네에만 있기가 너무 답답하고 심심해서 '다른 공장 장점을
배워서 내 공장에 적용 시키겠다' 라는 그럴싸한 핑계를 대고 렌터카 빌려서 이 공장, 저 공장 관광 다닌 적이 있었다.
개판으로 운영 중인 공장에도 가 봤는데 그냥 쓰레기 장이었다. 품질 관리도 안 하고 있고 그냥 생산하는 대로 전부
적자였다. '바닥에 돈을 그냥 뿌리기는 뭐 하니까 일하는 시늉이나 하고 돈 가져가라' 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회사에서 참다가 안 되겠다 싶어 동기를 이 공장으로 발령했다. 동기가 평소에 스트레스받거나 지시한 대로
안 하면 약간 소리를 지르는 성격이 있는 거 같았는데 공장에서 몇 번 소리를 질렀고 여기서 베트남인들이 앙심을
품지 않았나 싶었다. 어느 날 아침에 출근하는데 공장 입구에서 남자 7명한테 둘러싸여 집단 폭행을 당하게 됐다.
그나마 다행인지 골절 없이 전신 타박상으로 끝났는데 회사에 알려 큰 병원에 가야겠다고 차를 보내달라고 했는데
알겠다고 하더니 차 없다고 마냥 기다리라고 했다. 결국 당일에 가지 못 하고 다음 날 병원에 갈 수 있었다.
동기는 이 공장에서 일 못 하겠다고 근무지를 바꿔달라고 요청했는데
회사는 네가 관리를 잘 못해서 이런 일 생긴 거라며 돌아가라고 했다. 병원 제 때 못 갔다 와서 서러운데 다시 가라고
하니까 열 받아서 다음 날 사표내고 렌터카 불러서 퇴사했다. 나오기 전에 임직원들한테 엄청 욕먹었다고 했다.
특히나 동기 사수는 그나마 자기를 보호해 주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는데 똑같이 자기한테 욕 하길래 상당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했다.
중간중간 이미 다른 대리들은 자진 퇴사를 했고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동기도 자진 퇴사함에 따라 주재원 초반에 같이
있었던 사원/대리들은 전멸했다. 더 이상 주재원 안 뽑고 GYBM(A.K.A 김우중 사관학교)에서 신입 직원들을 돈 주고
사 오게 됐는데 현지 채용이 주재원보다 훨씬 싸게 먹히니 인건비 줄이려고 했던 사장의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베트남 주재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억팔이] 베트남 주재원 (하루일과) (0) | 2019.06.25 |
---|---|
[추억팔이] 베트남 주재원 (동네) (0) | 2019.06.22 |
[추억팔이] 베트남 주재원 (사원/대리 퇴사 1) (0) | 2019.06.19 |
[추억팔이] 베트남 주재원 (무이네 여행) (0) | 2019.06.18 |
[추억팔이] 베트남 주재원 (병원) (0) | 2019.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