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 현장으로 내려가서 마찬가지로 직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일반 공인들은 웬만하면 나보다 나이가 적거나 비슷했고 많은 사람이 몇몇 있었다. 관리자급은 사무실과 마찬가지로
형/누나들이었고 단 1명만이 나보다 나이가 어렸는데 일을 상당히 잘했다. (그러니까 어린 나이에 관리자급)
그리고 현장이다 보니 거친 면이 있었는데 나한테는 sếp ơi 그러면서 잘 해줬다. 멀리서 공인들한테 소리 지르는 모습을
가끔씩 보곤했는데 무서웠다. 영어는 전혀 안 통했는데 베트남어가 미숙했던 시절에 정말 암울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대화가 될 때까진 항상 사무실 직원 데리고 가서 통역시켰다.
현장에는 중국인 3명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형/누나들이었는데 3명 전부 아들/딸이 중국에 있었다. 명절 때나 휴가 때
중국에 가서 자녀들 보고 온다고 했다. 예전에는 중국인 10명 넘게 있었는데 대부분 퇴사하고 귀국했다고 들었다.
중국인들은 현장에서 본인들이 맡은 파타를 총괄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2공장에서의 인사를 마무리하고 1공장으로 갔다. 1공장은 2공장에서 오토바이 타고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서로 소개하고 인사하고 돌아왔다.
성비 불균형이 심했는데 공장 총 인원 중 5% 정도만 남자였다. 특히 나랑 주로 대화하는 남자 직원은 2명이 전부였다.
인사하다가 시간을 보니 점심시간이 되어 먹으러 갔다. 공장 안에 식당은 따로 없어 외부업체에 맡기고 식사할 수 있는
공간만 있었다. 급식판으로 배달 오는데 그거 들고 자리에 앉아서 먹었다. 회사가 미친 거 아니냐 싶을 정도로 놀랐던 게
있었는데 '밥' 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반찬' 이었다. 밥은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었다.
수준이 10년 전 군대 짬밥이 여기보다 10배는 나은 수준이었다. 공장에는 한국인이 나 포함 2명이 전부였고
선배가 '공인들이랑 똑같은 밥 먹어야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다' 고 해서 선배가 퇴사한 이후 얼마 동안은
공인들이랑 똑같은 밥 먹었다. 근데 지금에서야 생각해보지만 정말 의미 없는 행동의 하나가 아니었나 싶은데
맛 자체는 나쁘지 않았고 양이 문제였는데 그냥 눈으로만 확인해도 충분히 문제 파악이 가능했다.
순수하게 똑같은 밥을 먹었다면 의미가 있었겠지만 호치민 갔다가 복귀하면서 매번 참치, 김치, 라면, 밑반찬 등을
사 와서 같이 먹었기 때문에 그럴 바에 차라리 우리 밥은 좋은 거 먹어도 아무 상관없지 않았나 싶다.
일부러 한국 마트 가서 반찬거리 사는 거 정말 귀찮았었다.
더운 동네고 에어컨도 없는 공장 안에서 땀 뻘뻘 흘리면서 일 하는데 밥이라도 잘 먹여야 하는데 이러다가 파업 나는 거
아니냐면서 물어본 적이 있는데 예전에 파업 있었고 식비에 투자해서 개선된 게 이 정도라고 했다.
아마 파업 전에는 개밥 먹고 있지 않았나 싶었다. 공인들 안 쓰러지고 일 하는 게 신기했는데 본인들도 부족하다고
느낀 건지 몇몇 공인들은 점심시간에 공장 입구에서 파는 간식거리 등을 사 먹곤 했다.
나중에 선배가 퇴사하고 혼자 공장 맡게 되면서 회사에 몇 번이나 건의해서 식비에 투자해 개선시켰는데 사실 그것도
딱히 맘에 안 들었다. 800명 정도 있다 보니까 지출 비용이 갑자기 커진다고 하니 이해는 했다.
나중에는 도저히 못 먹겠다 싶을 때는 사무실 직원한테 돈 주고 nem nướng 사 오라고 해서 같이 나눠 먹거나
식사 끝나고 다 같이 공장 옆 카페 가서 아이스크림이나 먹곤 했다. 물론 내가 공장장이었고 월급도 내가 많고 돈 쓸데가
딱히 없는 총각 외국인 노동자라서 내가 사곤 했다.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잘 못 해서 공장 망할 정도로 어려운 건 거의 없었다. 셋업 된 지 오래된 공장이고
현장 부분은 관리자들이 경험이 많아서 웬만한 거는 알아서 풀어갔다.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관리자급에서
처리할 수 없는 문제를 파악해서 해결해 주면 되는 거였다. 기술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중국인들이 알아서 처리했다.
사무실 업무도 별 반 다르지 않았다. 인사/총무/회계도 관리했는데 정말 중요한 회계 경우에는 회계부장이 따로 봤고
나머지 급여, 사무실 직원 채용, 공장 유지 등등은 꼼꼼히 보고 서명하고 사수한테 전달했다.
생산 부분은 스케줄 짜고 오더가 적절한 지 확인하고 출고 날짜 및 품질 관리를 했는데 내 능력을
크게 벗어나는 점은 없었다. 크게 벗어났다면 그건 사수가 처리해야 할 문제였다.
이 시기 때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는데 선배 때문이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이었는데 사적으로는 괜찮다가 업무 때는
왜 이러지 싶을 정도였다. 처음 발령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퇴사할 사람이라며 나보고 혼자서 해보라길래
하고 있는데 선배가 갑자기 일 다 처리하고 왜 이렇게 느리냐며 욕하는데 경력직도 아니고 베트남어도 제대로
못 하는 상태라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욕먹고 있으니 이게 뭔가 싶었다.
'선배가 정상은 아니구나' 라고 확신한 일이 있었는데 토요일 업무 끝날 때쯤에 직원이 실수를 했는데 갑자기
확 열 받더니 바닥에 키보드를 내리꽂았는데 키가 팝콘처럼 튀어 올랐다. 임신한 직원이었는데 더 이상한 건
당시에 선배 와이프도 임신 중이었다. 호치민 내려가는 길에 자기가 먼저 말을 꺼내는데
'한 번씩 이렇게 해줘야 분위기 잡는다.' 면서 예전에도 몇 번 그랬다고 했다. 이 말 듣는 순간
'아... 나는 이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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