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주재원

[추억팔이] 베트남 주재원 (등산)

En aru'din 2019. 6. 28. 08:16

어느 날 단체 메일이 왔다.

 

'X월 X일 일요일 등산 있습니다.'

 

 

 

이게 웬 날벼락인가 싶었다. 유일하게 제대로 쉴 수 있는 일요일에! 베트남에서 등산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이게

 

뭔 일인가 싶어서 동기한테 물어보니 사장이 점심 먹으면서 총무과장한테 단합 차원에서 일요일에 등산하기 좋은 산을

 

찾아보라고 했다는 거였다. 사장이 지시하니 말리는 사람은 없었고 호치민에서 4~5시간 떨어진 산을 찾았다고 했다.

 

사장 밑으로 전 직원들이 단합해서 등산 가기 전날까지 사장 안 보이는 곳에서 욕하고 다녔었다. 이 단합을 노린

 

큰 그림이 아닐까라고 생각은 했지만 당시 정황을 봤을 때 절대 아닌 거 같았다. 가기 전날 토요일에 동기들끼리

 

밥 먹으면서 사장이 걷다가 넘어져서 달리 골절돼라고 다 같이 빌었지만

 

 

 

 

 

 

 

 

 

 

 

 

 

 

쉐라톤 호텔 앞에서 6시 반에 모이는 걸 확인하고 각자 호텔로 돌아갔다.

 

 

다음 날, 전화소리에 깨서 받았는데 '왜 아직 안 오냐?' 는 거였다. 시계를 보니 6시 25분이었는데 알람을 잘 못 맞춰

 

놨었던 거였다. 씻지도 못 하고 가방만 챙기고

 

 

 

 

 

 

 

 

 

 

누구보다 빠르게 난 남들과는 다르게

퀵실버 빙의한 거 마냥 전력 질주했는데 10분 늦었다. 버스에 타자마자 고개 90도로 숙이고 '죄송합니다.' 라고 했는데

 

다들 피곤하고 절망감에 빠져 일찍 다니라는 핀잔 정도로 끝났다. 다행히 사장이 타기 전이었다. 아침을 안 먹어서

 

가는 도중에 휴게소에 들러 다들 쌀국수를 먹었다.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보니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는데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니 동기들이랑 놀러 왔던 무이네

 

따꾸산이었다. 지난번에는 케이블카 타고 올라갔었는데 이번에는 걸어서 올라가야 할 생각을 하니 한숨만 계속 나왔다.

 

본격적으로 등산을 했는데 햇빛 비치고 너무 습해서 정상에 올랐을 때 이미 땀으로 샤워를 한 상태였다. 잠시 쉬다가

 

걸어서 하산했다.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차에서 전날 미리 사놓은 막걸리랑 소주를 꺼내오기 시작했다.

 

식당이 실내가 아닌 야외라 꿉꿉한 날씨에 그대로 노출됐고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지도 못했고 일요일 낮에 술을

 

마시니 인생 최악의 술자리로 기억에 남았다. 다들 한껏 취한 상태에서 식사를 끝내고 차에 올라 잠을 잤다.

 

눈을 뜨니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호치민 근처여서 이렇게 끝났다 싶어 '동기들이랑 저녁이나 먹고 집에 가야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모르는 길로 가길래 뭔가 싶었더니 사장 지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저녁 회식을 하는 거였다. 여기서도

 

술 마시고 뭐 하다 보니 이미 시간은 밤 9시를 넘긴 상태였다. 사장을 먼저 집에 보냈는데 멀리 떨어지자마자 다들

 

하나같이 욕을 하기 시작했다. 다 같이 마무리 짓고 집으로, 기숙사로 돌아가는데 나는 언제 끝날지 몰라 렌터카를

 

안 불러놓은 상황이라 호텔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 날 새벽에 출발했다. 불만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사장이 어디서

 

들었는지 다음번에는 지원자만 받는다고 했는데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만 남기고 이후로 등산은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