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팔이] 베트남 주재원 (주말)
주말에는 호치민으로 갔는데 어느 시점에 몇 달 동안 회식 말고는 가지 않고 동네에 계속 있었던 적이 있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내려가는 게 귀찮았고 호치민이 지루해졌었다. 초반에야 뭐든지, 지나가는 사람만 봐도 신기해서
여기저기 갔었는데 익숙해지니까 다 거기서 거기고 색다른 곳을 가도 별 감흥이 없었다.
차 타는 것도 싫었는데 렌터카 안에서 노트북으로 계속 업무를 처리해야 했고 직접 눈으로 볼 수 없으니 확인이나
해결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답답한 면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일요일 저녁이기도 하고 창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이나 오토바이, 건물 등을 보니 뭔가 싱숭생숭했다. 가다 보면 가로등이 없고 오로지 자동차 등에만 의존해서
가야 하는 길이 나오는데 뭔가 오묘한 느낌이 들어 정말 싫었다.
교통사고 위험도 꽤나 있었는데 렌터카 기사가 앞에 가는 오토바이 추월하려다가 맞은편 자동차랑 부딪힐 뻔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 느낌이
심장이 발끝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교통사고 난 후 상황을 본 적이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다리가 있었는데 차가 막혀서 가질 못 하고 있었다. 막히는 곳이 전혀 아닌데 막히고 있으니 기사가 차에 내려 어디를
갔다 왔는데 물어보니 교통사고가 났다고 했다. 호기심에 같이 구경 갔는데 다리 위에 산산조각 난 오토바이가 널브러져
있었고 옆에 하얀 천이 놓여 있었다. 천 앞에는 향이 타오르고 있고 어떤 여자가 울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하얀 천 밑에
시체가 있었다.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토바이랑 차랑 정면충돌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호치민 안 가면 업무를 직접 보고 해결할 수 있으니 마음은 편했다. 나랑 사무실 직원들은 12시에, 현장 직원들은
오후 3시에 퇴근했다. 일요일에는 정말 급하게 출고 문제가 있으면 현장 일부만 출근했고 나도 출근했다. 1년에 1~2번
정도? 점심은 굳이 공장에서 맛없는 밥을 먹을 필요가 없어 바로 퇴근했는데 직원들은 항상 먹고 퇴근했다.
집에 도착하면 점심 해결을 위해 오토바이 타고 마트로 갔다. 마트 안에는 롯데리아가 있었는데 메뉴는 호치민과
동일했다. 베트남어 익숙지 않았을 때는 베트남어로 주문해도 못 알아들어 영어 할 줄 아는 매니저가 주문받았는데
발음이 안정되면서 비로소 베트남어로 주문할 수 있었다. 매장에서는 안 먹고 매번 포장해서 집에서 먹었다.
먹을거리 쇼핑하기도 했는데 과자나 햄, 우유, 시리얼, 파스타 등을 샀다. 혼자 있다 보니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싸구려
와인도 사고 안주로 할만한 치즈류가 굉장히 저렴해서 냉장고에 종류별로 쌓아두고 있었다. 마트 안을 다니다 보면
항상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애들이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면서 따라왔는데 그 당시에는 상당히 귀찮아서
얘네들이 보인다 싶으면 이어폰으로 음악 들으면서 안 들리는 척했다. 지금은 후회스러운데 심심하던 차에 언어교환이나
하면서 친하게 지냈으면 어떨까 싶었다. 사무실 직원들도 가끔 마트에서 볼 수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집 앞 가게에서
삼겹살이나 채소, 과일 등을 샀는데 마트보다 저렴했다.
점심 먹고 나면 노트북으로 영화 보거나 동기들한테 전화하다가 낮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면 저녁 먹을 시간이었는데
대충 요리해서 먹고 소화시킬 겸 걸어서 동네 한 바퀴 걷거나 오토바이로 드라이브하다가 카페에 들어가서 음료수
마시면서 아이패드로 인터넷이나 게임을 하곤 했다.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는데 동네가 좋아서인지 운이
좋아서인지 한 번도 털려본 적이 없었다. 씻고 방 옆에 있는 작은 테라스에서 동네 경치를 보다가 잤다.
일요일, 늦잠 자고 싶어도 출근시간에 몸이 적응해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아침은 거의 매번 시리얼을 먹었다.
예전에 딱 한번 남자 직원이 전화 와서 아침 안 먹었으면 같이 먹자고 하길래 알겠다고 씻고 집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10분 뒤에 직원 오토바이 타고 어느 식당에 도착했는데 돼지 순대, 부속물 등을 파는 식당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서 보니
공장 화물차 기사랑 웬 나이 많은 사람이 앉아있길래 누구냐고 물어보니 자기 장인어른 될 사람이라고 했다.
'뭐지...? 왜 날 불렀지? 집에 다시 갈까?' 하다가 불러준 직원이 무안해할까 봐 그냥 먹기로 했다. 음식 맛은 있어서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보드카를 시키길래 '오늘 하루 이렇게 끝나는구나.' 싶었다. 술을 자꾸 권했는데 안 마시기에는
뭐해서 넙죽넙죽 받아마셨더니 어느 순간부터 바닥이 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식사 끝나고 집에 갈 줄 알았는데
커피 한 잔 마시고 가라면서 카페로 끌려갔다. 술이 너무 취해서 커피도 못 마시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다가 집에
드디어 간다길래 오토바이 얻어 타고 집에 와서 침대에 누웠는데 눈 떠보니 저녁 7시였다.
토요일과 마찬가지로 시간 보내는 방법은 영화, 산책, 카페, 드라이브... 똑같았다. 내가 발령받기 전에 있었던 선배들
말로는 직원들 집에 가서 주말 보내고 그랬다던데 주말에 같은 직장 사람들 만나는 건 안 좋아해서 그렇게 하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