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팔이] 베트남 주재원 (하루일과)
평일 아침에 눈 뜨고 밥 먹고 출근해서 공장 운영하는 것도 나만의 스타일로 이뤄갔다. 출근 시간이 7시까지 였는데
알람을 6시에 맞춰놨다. 나중에 습관이 돼서 알람 안 울려도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늦게 자고 싶은 휴일에도
마찬가지였다. 화장실이 2층에 1개 1층에 2개 있었는데 2층 방에서 자기 때문에 2층 화장실을 썼다. 1층 화장실은
1년에 1~2번 쓸까 말까였다.
아침은 반미를 먹었다. 집에서 1분 정도 걸어가면 반미 파는 아줌마가 있었는데 거의 매일 아침을 거기서 사 먹었다.
비가 와도 늘 그 자리에 있었는데 습기가 많은 날에는 빵이 눅눅해 그냥 팔아도 될 거 같은데 눅눅하면 맛없다며
바삭할 때까지 구워줬다.
집으로 돌아와 부엌에서 먹고 문단속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공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이 크게 2코스로 나뉘는데
오른쪽으로 가면 공장으로 바로 갈 수 있고 왼쪽으로 가면 조금 돌아서 가는데(시간상 1분 차이) 왼쪽 길이 그나마
번화가였고 오토바이가 많이 다녀 활기차 보여서 왼쪽 길로 다녔다.
10분 정도 걸려 공장 입구에 도착하면 항상 북적였는데 직원들이 오토바이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번호표를 받고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당연히 해당사항이 아니어서 기다렸다가 지나갈 공간이 생기면 그때 들어갔다.
공장에는 물건 상하차 하는 곳, 그냥 출입구, 출근카드 기계가 있는 곳, 총 3군데의 출입구가 있었는데 나를 제외하고
전 직원들은 기계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야 했기에 한참 줄 서야 공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보통 사람 없는
곳으로 들어가다가 가끔 아무 이유 없이 직원들 따라 줄 서서 들어가곤 했다.
2층에 사무실이 2개 있는데 하나는 인사/총무/회계 직원이 쓰고 다른 하나는 내가 있는, 영업/생산/자재 직원들이
쓰는 곳이 있었다. 내 자리 뒤에는 벽이 있었고 직원들은 내 앞으로 앉는 구조였다. 여기 오자마자 벽 앞에 앉았는데
경력으로 봤을 때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잡일 해야 할 인간이 이 자리에 앉아도 되나 싶었다. 자리에 앉아있으면
직원들이 1~2명씩 차례차례 왔다. 7시 조금 지나면 인사 직원이 오늘 출근율 서류를 가지고 왔는데 단 한 번도
100%를 달성한 적이 없었다. 애가 아프거나 본인이 아프거나 집에 일이 생기거나 등등 달성할 방법이 달리 없었다.
크게 어려운 업무는 없었다. 셋업 중인 공장이 아니라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하나씩 이전하기 시작할 때쯤의 공장이라
이미 자리 잡은 상태였고 직원들 능력이 좋았다. 직원들이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면 내가 해결하고 내가
감당 못 하면 사수한테 연락해 해결하곤 했다. 베트남인들이 게으르거나 남한테 잘못을 떠넘긴다던가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긴 한데 동네마다 다른지 적어도 내가 관리하는 직원들은 해당사항이 없었다.
오더 관리는 사수한테 배워서 했는데 매일 생산량 확인하면서 계산하고 현장관리자와 이야기하면서 사수랑 영업부에
통보했다. 회계는 모르기도 했고 회계부장이 확인하고 있어서 신경 쓸 필욘 없었고 총무는 확인하고 결제하고 그게
다였다. 인사는 가끔 관공서에서 종이 날아오거나 점검한답시고 공무원(?)들이 찾아왔는데 점검 끝나고 갈 때
밥값이나 챙겨줬다. 뜬금없이 나랑 같이 밥 먹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같이 밥 먹곤 했다.
직원들이 몇 백 명 있다 보니 월말쯤 급여서류가 30cm씩 쌓였는데 정해진 금액을 많이 벗어난 인원에 대해 확인하고
한글로 설명을 적었는데 내 서명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수도 서명해야 했고 가끔씩 사수가 물어볼 때가 있어서
묻지 말라고 적었다. 앉아 있다 보면 현장관리자들이 찾아오는데 대부분 제품 확인을 받으러 올라왔다. 사람이
대량으로 만들다 보니 샘플처럼 만들 순 없고 조금씩 오차가 나기 마련인데 출고가 가능한 선인지 알려줘야 했다.
이게 정말 중요했는데 초반에 잘 모를 때는 일일이 사수한테 확인해달라고 보냈으나 나중에는 보는 눈이 생겨서
까다로운 바이어 제품을 제외하곤 내가 태그에 사용 가능하다고 사인해서 제품에 붙여줬다.
점심시간에 밥 먹고 휴식시간이 있는데 각자의 방법대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잡담을 하든지 잠을 자든지 간식을
사 먹든지. 항상 공장 앞에 간식 파는 상인들이 있어서 몇 번 사 먹어봤는데 괜찮았고 가격도 저렴해서 골든벨 울리려고
생각은 했으나 인원이 너무 많았고 혹시나 못 먹게 되는 직원들의 불만이 있을까 봐 시도는 하지 못 했다. 가끔 사무실
직원들만 공장 옆 카페 데리고 가서 음료수나 아이스크림 사주곤 했다. 한동안 피로에 지친 적이 있었는데 식당 옆에
빈 방이 있어서 밥 다 먹자마자 3~40분씩 낮잠을 잤는데 이거 때문에 위가 많이 망가졌다.
오후에는 사무실에서 처리할 일이 많지 않아 보통은 1층 현장에 있었다. 전체적으로 한 바퀴 돌면서 특이사항이
있나 없나 확인하고 생산라인 들어가서 같이 작업했다. 근데 말이 작업이지 만드는 능력은 없어서 그냥 QC역할만 했다.
매일 포장 완료된 제품을 랜덤으로 10박스씩 골라서 혼자서 검품했는데 불량품만 따로 모은 다음 현장 관리자, QC, QA
불러서 주의 줬다. 관리자들은 각자 자리로 돌아가서 공인들한테 똑바로 하라고 소리 지르곤 했다.
다른 공장 하나는 생산라인은 없고 보조 역할이라 중국인 관리자를 매일 보내고 나는 2~3일에 한 번씩 갔다.
4시 30분이 되면 사무실 직원들은 퇴근하고 나는 5시 반, 현장 직원들은 6시, 야근 있으면 8시에 퇴근했다.
초반에는 베트남어를 너무 모르다 보니 인사 직원한테 선생 하나 구해달라고 해서 퇴근하고 집에서 배웠다.
베트남 학교 국어선생이었는데 나보다 2살 어렸고 영어를 할 줄 몰랐다. 오로지 베트남어만 하니까 더 잘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였다. 숙제를 안 해서 혼나기도 엄청 혼났는데 진짜 선생 맞나 보다 싶었다. 베트남 사람답지
않게 하얀 얼굴이었는데 일반적인 베트남인이라면 아무리 화장을 해도 까무잡잡한 티가 나는데 그렇지 않을 걸 보니
본판도 하얀 얼굴인 듯했다. 나도 어디 가서 하얀 편에 속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나보다 더 하얬다. 생김새도 동네에서
볼 수 없는 도시형(?) 얼굴이었다. 늘 정장느낌의 옷과 단정한 머리를 했는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클럽 느낌의 옷과
머리로 바뀌고 콧소리 내면 애교를 부리길래
'뭐지? 미쳤나? 뭔가 불안한데? ' 싶어서 한 2주 동안 지켜보다가 더 배운다고 보냈다. 이후로 공장 직원한테 따로
배우다가 그만두고 그냥 일하면서 배웠다.
저녁 먹고 항상 시간이 남았는데 동네에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보니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거나 카페를
거거나 동네 한 바퀴 산책을 하거나 이게 다였다.
공장에서 내가 제일 윗사람이다 보니 눈치 볼 게 없어서 편했지만 내가 총괄하고 책임져야 하니 불편한 점도 마냥 없진
않았다. 사장 이하 모든 임직원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자리였는데 회식 때마다 '몇 달만에 보네, 얼굴이 갈수록
좋아보인다.' 는 이야기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