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팔이] 베트남 주재원 (신입교육 기간 2)
이 공장에는 첫 공장과 마찬가지로 공장으로 쓰는 건물이 2동 있었는데 1동에서만 생산을 하고
다른 1동은 사무실, 창고 용도로 쓰고 있었다. 셋업 된지도 오랜 시간이 흘렀고 인원 수급이 원활치 않았고
임금상승률이 높았으며 첫 공장지역 주변으로 새로운 공장들을 짓고 있는 상황이라 이 공장은 죽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첫 공장보다는 한국사람이 많아서 베트남 아줌마 2명이 한식을 차리고 있었다. 첫 공장과 마찬가지로 맛이 준수했다.
기숙사는 공장 내에 없었고 차를 타고 20분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는 계열사의 공장 기숙사를 이용했다.
역시나 1층은 베트남인 2층은 한국인이 썼다. 한국인들은 1인 1실을 쓰고 있었는데 방이 모자라서 우리는
2인 1실을 썼다. 동기들이 쓰고 있는 옆방에 귀신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신입사원 놀리려고 농담으로
한 말인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1주일에 가위를 4번 경험하는 기염을 토하고 나서 그 방은 영원히 창고로
쓰게 되었다. 동기들 말로는 어떤 여자가 천장에서 내려와 귀에 대고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목을 졸랐다고 했다.
기숙사 밖으로 나가면 나름 번화가라서 양쪽으로 상가가 이어지는데 퇴근하면 구경도 할 겸 자주 나갔다.
주로 과일을 사거나 쌀국수를 먹거나 (이 시점부터 Pho가 질리기 시작) 카페에서 음료를 마셨다. 기숙사 바로 옆에
큰 카페가 있었고 수요일마다 노래자랑을 하는 거 같았는데 노래소리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 했다.
쉬고 있으면 선배가 방에 놀러와서 '베트남어를 잘하려면 여자를 만나 대화를 많이 해야한다' 면서 채팅사이트를
몇 군데 가르쳐 줬는데 거의 매일 밤마다 했고 실제로 만나기도 했다. 가끔씩 계열사 사장과 저녁에 술을 마셨는데
특이하게도 기숙사에서 살고 있었다. 직급이 사장인만큼 아무리 비싼 아파트를 가더라도 회사에서 처리해주는데
혼자서 놀 줄 모르는지 항상 부하직원을 술로 괴롭히고 있었다. 월급 받아서 전부 양주를 사거나 아니면 양주 장사를
하나 싶을 정도로 방에 술이 많았는데 1병씩 비울 때마다 계속 다른 양주가 나왔다. 보통 10명이면 무조건 7병 이상
마셨는데 나는 술을 잘 못 마시니 먹고 토하고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새벽까지 이어졌는데 때문에 다음 날 사무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베트남 직원한테 교육받고 있었는데 양해를 구하고 동기들끼리 단체로 졸다가 순찰(?) 나온
부장한테 걸려서 욕을 먹었던 적이 있었다. 우리를 가르치던 선배도 덩달아 욕먹었는데 본인도 상황을 잘 알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라 우리에게 가볍게 주의만 줬었다. 안 마시고 싶어도 다 같이 기숙사 안에 있는지라 어디로
도망갈 수도 없었다. 한 번은 안 마시려고 어디 구석에 박혀 있었는데
이 공장에서는 특별한 교육은 따로 없었고 차로 1시간 정도 가면 다른 공장이 있었는데 거기서 1주일 정도 교육받았다.
신입교육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시점에 생산부장이 나와 동기 1명을 따로 불렀는데 여기서 베트남 생활의
운명이 갈리게 됐다.
호치민에서 몇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공장이 하나 있는데 선배 1명이 공장장 하고 있었다. 곧 퇴사할 사람이라
1명은 거기로 가든지 아니면 2명 다 첫 번째 공장으로 발령될 예정이라고 했다. 그 공장은 오래돼서 시스템이 그나마
체계적이라 크게 일 할 것은 없고 한 번씩 생산부장 본인이 올라가서 봐준다고 하며 하루 이틀 시간을 줄 테니
누가 갈 건지 정해서 보고하라고 했다. 퇴근하고 별 고민 없이 동기한테 내가 가겠다고 했다. 윗사람이랑 같이 있으면
안 좋을 거 같고 혼자 있고 싶어서 그랬다. 동기는 별 말없이 승낙했고 다음 날 내가 가겠다고 보고했다.
교육기간에 내가 발령받아서 갈 공장에 견학 간 적이 있었는데 선배한테 내가 후임자라고 인사하고 질문 간단하게
몇 가지고 했다. 1시간 정도 공장 여기저기 둘러보고 직원들이랑 인사하다가 복귀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외박을 나가게 됐는데 토요일 오전까지 근무하고 점심 먹고 기숙사에서 회사 차 타고 나갔다.
호치민 쉐라톤 호텔에서 내리고 일요일 저녁에 다시 그 자리에서 차 타고 복귀했다.
외박 나왔을 때의 그 느낌은 숨 막힐 듯한 감옥에서 탈출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보통 여행 가면 한 군데라도 더 봐야겠다는 빠듯한 스케줄이 있는데 주재원이라 꼼꼼히 볼 수 있고
(근데 꼼꼼히 안 봤음) 못 보더라도 다음에 얼마든지 볼 수 있어 사람이 느긋해졌다. 근데 너무 느긋해져서
호치민 관광코스, 성당, 우체국, 대통령궁, 전쟁기념박물관 등을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귀국 날이 돼서야 보게 됐다.
회사에서 1성급 호텔의 숙박비를 지원해줬는데 hoa don do를 끊어서 매번 회사에 제출해야 해서 나중에는
귀찮아서 안 받았다. 그리고 선배들이 예전부터 오랫동안 거래(?)하는 호텔에 외박 때마다 이용했는데 요금할인은
없었으나 일요일 저녁까지 체크아웃 안 해도 추가 요금은 받지 않았다. 주말만 되면 10명 정도 방 하나씩 잡았으니...
위치는 좋으나 시설은 1성답게 우리나라 모텔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근데 대학생 때 몽골에서 벌레가 득실거리는
게르에서도 잘 잤으니 별 문제는 되지 않았다.
이 첫 외박에서 선배를 통해 처음으로 로컬 가라오케를 가게 되었고 유흥에 눈을 뜨게 됐다. 첫 느낌은 솔직히
그저 그랬다. 노래를 부를만한 것도 없었고 무엇보다 말이 안 통해서 뭘 어떻게 해야하나 싶었다.
이렇게 생활하다가 1달이 지나 교육이 끝났고 각자 부서 발려을 받아 흩어졌다. 마치 훈련소 생활 끝내고
자대 배치받는 느낌이었다. 나는 멀리 떨어진 공장으로 가게 되었고 생산부장은 사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