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팔이] 베트남 주재원 시작
군대 전역한 이후로 본격적으로 전공 공부를 파기 시작했는데 관련 직종으로 취직을 목표로 했기에 여러 가지
대외활동도 했었다. 석/박사 학위 따러 가는 거 아닌 이상 해외와 전혀 관련이 없었는데 첫 직장이
해외가 될 줄은 필리핀 어학연수를 다녀오기 전까지 상상도 못 했다. 다녀온 계기는 과 선배가 추천해주길래 신청했고
마침 학교에서 처음 시행하는 거라 별 다른 조건없이 참가할 수 있었다. 1학기 동안 주중에 3번의 토익 수업이 있었고
방학 때는 매일 수업이 있었다. 2번의 중간평가와 최종평가점수 커트라인을 넘기면 학교에서 1학기, 4개월 정도의
체류비용을 지원해 주는 거였다. 점수는 그렇게 높지 않아서 신청한 사람들 그냥 다 보내주려고 의도하지 않았나
싶었는데 그래도 떨어질 사람들을 떨어졌다. 모든 수업을 끝내고 가볍게 평가점수를 넘기고 2학기 때 어학연수를 갔다.
이후로 그 동안 함께했던 '과' 사람들과의 연락은 모두 끊어졌다.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뒤 본격적으로 취직 준비를 시작했는데 해외취업을 간절히 원했다. 체류 중일 때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됐는데 생활이 뭐랄까...유유자적? 한가한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필리핀에서의
생활이 상당히 여유로웠는데 하루에 5~6시간 정도만 수업했고 그 이후에는 자유시간이었다. 별 다른 제약사항이 없어
마음대로 기숙사 밖으로 나가서 밤 12시 전까지만 들어오면 됐었고 주말에는 여행을 다니곤 했다. 거의 관광과
다를 바 없었는데 해외에서 관광으로 시간 보내는 것과 직장으로 시간 보내는 것에 대한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아직 학생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라 가지지 못한 상태였다.
졸업 연기하고 자소설을 여기저기 뿌리면서 연락을 기다리던 중, 어느 중소기업 해외영업부에 면접을 보러 갔다.
공장이 공단 외곽 끝자락에 위치해 있었는데 버스가 다니지 않아 택시 타고 갔다. 입구에 내려서 들어가는데
안내 표시가 없어 전화하려다가 마침 사람이 지나가길래 물어보니 건물 안 응접실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기다리기는 했는데 뭔가 이상했다. 공고에 게시된 면접시간은 이미 지났고 온 사람은 나 혼자였는데 뭔가 찝찝했다.
얼마 안 있어 인사담당자라며 왔는데 풍기는 모습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어쨌든 면접은 진행됐는데
어떤 사람이 들어오더니 이것저것 물으면서 혼잣말하고 나한테 화도 내고 그러다가 사라졌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사장이라고 했다. 면접 마지막에 희망연봉을 물어보길래 2,400 부르니 2,200 이상은 어렵다며 대신에 공장 기숙사 및
식사를 제공한다고 했다. 3인 1실에... 하루에 4끼를 제공한다는데 나머지 1끼가 뭐냐고 물으니 밤 12시에
준다는 거였다. 기본 12시까지 야근은 필수가 아니었나 싶었다. 공고에는 격주로 토요일에 쉰다고 되어있었으나
실제로는 토요일 오후 6시까지 근무하고 필요하다면 일요일도 나와서 일을 해야 한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계산해보니 당시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금액이 나왔는데 차라리 편의점 알바를 하는 게
더 나아 보였다. 다행히 면접 결과는 불합격이었고 합격했으면 아마 베트남은 절대 갈 수 없지 않았나 싶었다.
여담으로 똑같은 공고가 취업사이트에 몇 달 동안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볼 수 있었다.
다른 곳에도 자소설 뿌리다가 지쳐 마지막으로 뿌리고 '공장 생산직에나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쯤에 면접 기회가
생겼는데 내가 주재원으로 있었던 회사였다. 본사는 서울에 있고 베트남/중국 주재원을 모집했는데 2~3 차례의
면접 후에 최종 합격에서 베트남에 가는 것으로 확정했다. 뭔가 급하게 사람을 뽑는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면접 봤던 사람들 대다수가 그렇게 느꼈다. 이상했지만 합격했기에 그냥 넘어갔다.
이 당시에는 몰랐지만 베트남어도 모른 체 신입 주재원으로 가는 막차를 탔는 게 아닌가 싶다. 다른 나라에도
법인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이번에는 뽑지 않았다. 아무튼 원하던 해외로 나가게 됐으니 아주 기뻤다.
최종적으로 30여 명이 뽑혔고 베트남 주재원이 열몇 명 뽑혔는데 1/3은 호치민 나머지는 하노이로 나뉘게 됐다.
말만 호치민, 하노이고 실제는 차 타고 몇 시간을 더 들어가야 한다는 건 베트남 도착해서 알게 됐다.
출국 날, 인천공항에서 오후 늦게 동기들끼리 만났는데 서먹서먹했다. 연수원에서도 얼굴 봤긴 했지만 며칠 있지 않아서
친해질 기회가 거의 없었고 연수원 룸메이트들은 전부 다른 지역으로 갔기에 사실 첫 만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차피 시간이 해결해 줄거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Xin Chao'라는 인사말도 모른 체 출국했다.
Tan Son Nhat 공항에 밤 11시 넘어서 도착했는데 해가 떨어진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공항 문을 나오면서 느낀
그 꿉꿉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총무과장이 나와서 마중해줬고 차 타고 공장으로 이동하는데 가도 가도 도착을 안 해서
취업사기 당해서 원양어선에 팔려가는 줄 알았다. 중간에 잠들었는데 일어나 보니까 새벽 2~3시쯤에 도착했고
공장 안 기숙사 2인 1실로 배정받았다. 입구에서 선배들을 잠깐 볼 수 있었는데 몇 달 뒤에 문득 생각이 나서
'그때 왜 늦게까지 안 자고 있었냐' 고 물어보니 우리들 얼굴 보려고 깨어있었다고 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선배들 따라서 밥 먹고 출근하라길래 대충 짐 풀고 침대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