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스캠 (Romance Scam)
언어교환 어플인 Hello Talk을 쓰고 있는데 어느 날 대화가 들어왔다.
참고로 상대방 얼굴은 본인이 아닌 도용사진 가능성이 크기에 삭제했다.
내가 보낸 대화도 삭제했는데 형편없는 영어 실력에 놀랄까봐 사전검열했다.
상대방 이름은 Kate. 여자, 뉴욕에 살고 있고 32살 직업은 오타가 났지만 외과의사라고 소개했다.
'왜 의사가 이걸?' 이라고 의심이 살짝 생겼는데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고 의사라고 하면 안 되는 법은 없으니
일단은 넘어갔다. 사진에는 안 나와있지만 어플 내에서 확인하면 상대방이 어디에 있는지 간략하게 나온다.
뉴욕이라고 뜨긴 했는데 위치는 GPS 어플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으니 100% 믿을 순 없었다.
여담으로 포켓몬고 한참 유행할 때 포켓몬 잡으로 폰으로 세계일주를 했었다.
특별한 건 없는 일상적인 대화내용이다.
10월말쯤에 한국으로 휴가 온다고 하면서 라인이나 카카오톡 아이디를 물어봤다. 어플 내에서도 간혹
여행가지 전부터 현지인들이랑 연락주고 받다가 여행가서 도움받는 후기들이 가끔씩 보였기에 그러려니 했다.
카톡으로 넘어왔다. 비행기표 예약하고 일정을 이메일로 보내줄테니 메일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예전에 뻘짓하려고 만들어놨던 지메일을 알려줬다.
예약내용을 이메일로 보냈다고 했다. 서울에서 머무를 거 아니냐고 물이니 내가 원하는대로 한댔다.
풀네임이랑 주소 가르쳐 달라고 했는데 장기 털러 원정오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이렇게 이메일이 왔다. American Airlines 사이트에 들어가서 확인해보니 편명은 일치했다. 보낸 문장을 보니
뭔가 냄새가 조금씩 나기 시작했는데 예약코드 물어보려다가 그냥 안 물어봤다. 이전까지는 진짜 반 스캠 반 정도로
생각했는데 메일 이후로 이 새끼가 나한테 사기를 치려고 하는구나 싶었다.
주소 왜 물어보냐고 하니 공항에서 어쩌고 저쩌고... 아무 주소를 불러줬는데 틀렸단다.
똑같은 주소에 Republic of Korea만 바꿔서 보내니 틀렸다는 말은 안 했다. 풀네임이랑 폰 번호도 물어보길래
가짜 이름에 없는 번호 알려줬다. 이쯤에서 대화 차단하고 그만 할 수도 있었는데 그냥 기초영어나 다시 보자는 식으로
계속 이어갔다. 그 외에도 최근에 심심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결말이 무척 궁금했다.
대화가 매크로를 돌리는 듯한? 집에서 뭐해? 밥 먹었냐? 퇴근했어? 오늘 어땠어? 등등 계속 반복되는 내용만 이어졌다.
환기를 시키려고 다른 질문을 했는데 원상복귀 시키는 노잼 상대방.
뜬금없이 응급수슬 필요하다고 연락받고 멕시코로 가야한다고 했다.
멕시코로 가는 공항에서 '중요한 가방'을 나한테 보냈다고 했다. 왜 보내냐고 물으니 한국에서 쓸 것들이 있다고 하길래
내가 훔쳐가면 어떻할 거냐고 물어보니 '니가 안 훔쳐갈 것도 알고 한국은 안전한 곳이잖아.'
외국인도 알고 있는 치안강국 대한민국 클라스! 캬 주모~~
며칠 뒤에 아직 가방 못 받았다고 하니 운송업체에서 메일이나 폰으로 연락준다고 했다.
가방에 뭐 들어있냐고 물으니 옷, 카메라, 노트북(laptop 말하는 듯) 등등 보냈단다.
아직 아무 연락 없다고하니 나중에도 연락없으면 말해달라고 했다. 근데 웃긴 게 이 때부터 연락없다고 하니
10~20분 안으로 항상 이메일이 왔다.
기다리던 이메일이 왔다. 뉴욕에서 한국으로 보낸 가방이 태국(?)에 있다. 850$ 아니면 96만원을 보내야
가방 배달한다는 내용이었다. 드디어 돈 이야기가 나왔는데 언제 돈 이야기 꺼내려나...인내하고 또 인내했었다.
이게 맞는 계좌인가 싶어서 100원을 넣어보려고 했는데 어떤 이유로 입금이 막혀있었다.
만약에 로맨스 스캠인 줄 모르고 진짜 입금하려고 했어도 입금이 안 됨.
계좌번호 틀린 줄 알고 다시 받았는데 똑같은 번호였다. 은행에 물어봤는데 계좌 안 맞다고(물론 거짓말) 하니
맞다면서 스샷 찍어서 이메일 보내달라고 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합성해서 이메일에 첨부시켜 보내줬다. 상대계좌 빼고 나머지 숫자는 다 가짜다.
입금 확인했으니 가방 보내준다고 했다.
'사실 입금 안 했어.' 라고 하니 '왜 안했어?' 라고 반문하길래 가방 보내준다고 했으니 안심하라고 했다.
어김없이 예상한 내용으로 온 이메일. 입금 안 됐다길래 장난치냐면서 보냈다고 하니 거래내역 스샷 찍어서
보내달라고 했다. 합성 중인데 기다리고 있다고 재촉했다.
친절히 입금 시간까지 합성해서 보내줬다.
이후로 장난치고 있다는 걸 눈치챘는데 메일도 카톡도 답장이 없다.